숨
살아가기 위해 깊은 한숨을 쉬는 자. 죽은 이를 대면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
“육체를 떠난 이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왔다. 인간의 삶은 마치 성냥개비에 불을 붙인 듯 삶의 아름다움, 추함을 거침없고 강렬하게 불태우고 사그라진다. 그것이 꺼지고 났을 때, 산 자가 느끼는 공허함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깊고 어둡다. 장의사가 말하길 죽은 이의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장례를 치르기 전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죽은 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는 오늘도 죽음과 만난다. 파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할머니가 있다. 몸 상태가 괜찮으면 동네를 돌아다니며 파지를 줍는다. 반나절 주워 고물상에 팔면 1,600원을 받는다는 그녀는 할 수 있는 게 이것 말고는 없다고 한다. 이들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한숨이 뿜어져 나오는 무거운 공기를 헤쳐 나가는 것과 같다. 할머니는 죽지 못해 산다고 한다. 오늘도 그녀는 파지를 주우러 간다. 다리가 힘을 잃을 때까지 파지를 계속 주울 생각이다.
세상의 모든 건 시작과 끝이 있다. 삶을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길지만, 우주적 관점에서는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이야기를 시작한 건 모친상을 치른 후였다. 죽은 자의 영혼이 우주까지 솟아나갈 것처럼 느껴졌다면, 산 자의 영혼은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무거움을 느꼈다. 각자 경험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내가 겪은 느낌은 이렇다. 산 자의 관점에서는 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쩌면 저 너머에서는 이제 시작일지도. 작품에는 장의사와 파지 줍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구성은 두 인물의 모습을 교차하는 방식을 택하지만, 결국 하나의 주제 안에서 펼쳐진다. ‘살아간다는 것’과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 이 사이에서 느껴지는 ‘삶’과 ‘죽음’에 대해 휴머니즘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작품을 통해 관객이 죽음을 이해하고, 삶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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