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40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모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된 나는 고모의 선택을 이해하는 여정 속에서 한국 사회와 가족 안에서 여성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묻는다.
나는 고모처럼 될까 봐 두려웠다. 양 씨 집안의 첫째 딸로 태어난 나는 이름보다 ‘누나’라는 말이 익숙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동생이 가족의 중심에 있는 것이 익숙한 만큼, 가족 안에서 나는 내 자리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대학 졸업을 앞둔 밤, 술에 취한 아빠는 처음으로 누나가 있음을 고백했고, 나는 40년 전 사라진 고모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고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까? 할머니가 남겨놓은 고모의 사진을 발견한 뒤, 나는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고모를 찾아 떠나는 나의 여정은 실사와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진다. 애니메이션 속 지워졌던 고모의 시간을 새롭게 그려 내고, 나는 그녀와 대면한다. 그리고 아빠의 트라우마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자살한 여성’이라는 낙인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세대를 이어 오는 이 낙인을 끊어 내고 새로운 가족의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사라진 고모의 자리뿐만 아니라 가족 안에서 늘 한쪽으로 밀려나 있었던 나의 자리 또한 찾기 위해.
나에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고모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상대방도 종종 자신들의 비슷한 고모와 이모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동안 세상에 이야기될 수 없었던 존재가 나의 고모뿐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작은 위안을 주기도 했다. 동시에 늘 의아한 점이 있었다. 왜 가족의 비밀 이야기 속 비극의 주인공은 많은 경우 여성이어야 했을까? 나는 그 비극의 원인이 그녀들 탓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고모가 사라지고 40년이 지난 지금, 여성으로 태어난 존재가 경험하는 차별은 가부장제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설명하기 어려워졌을 뿐이다. 차별은 ‘사적’이라는 말로 사소한 일이자 드러나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고, 입에 담기에 쩨쩨하고 치사한 일이 되어 버렸다. 〈양양〉은 그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기획이다. 비운으로만 남겨진 채 잊힌 고모의 삶과 죽음을 다시 이야기함으로써, 나는 비극의 고리를 끊어 내려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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