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안경들
사라진 죽음, 돌아온 안경, 기억하는 사람들, 경합하는 시선들
카메라 앞에 앉은 안경들은 자신의 시력에 대한 일상적인 기억을 꺼내기 시작한다. 언제부터 눈이 나빠졌는지, 처음 안경을 쓴 날의 기분은 어땠는지. 화제는 자연스레 오래전 자신들 곁에서 사라진 ‘검은 뿔테 안경’으로 옮겨간다. 30 년 전 검은 뿔테 안경이 바다에서 떠오른 날, 그들은 모두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나이가 든 그들은 이제 안경이 없으면 세상을 보지 못한다. 안경은 때때로 불편하고, 벗어던지고 싶은 물건이다. 기억은 서서히 사라져 가는데, 검은 뿔테 안경은 수십 년 만에 땅속에서 솟아났다. 솟아난 안경은 그들에게 질문으로 돌아온다. 지난했던 시간을 다시 반복할 수 있느냐고. 안경들은 각자의 대답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2014년 여름의 일이다. 나는 25년 전에 죽은 청년의 이장식 영상 기록을 담당하게 되었다. 영정 사진 속 청년은 곱슬거리는 파마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1989년, 청년은 8월의 교정에서 사라져 먼 남해의 외딴 섬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청년의 친구들은 다음 날 섬으로 내려갔지만, 두 달간의 조사에도 청년이 왜 죽었는지 밝혀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에서 떠오른 안경을 무덤에 함께 묻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들의 삶에 청년의 그림자는 의무처럼 드리워져있다. 나이가 들어 주름진 그들의 눈과 그 위를 포개듯이 얹어진 안경들이 어느새인가 나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죽은 청년만큼이나 그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졌다. 검은 뿔테 안경이 사라진 그날은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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