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신부
1963년, 여성 131인이 서울의 한 수용소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다. 감독은 탈출의 주동자, 1942년생 ‘김옥자’를 찾아 나선다.
1963년의 비바람 치던 늦은 밤, 131명의 여자들이 ‘서울시립부녀보호소’를 탈출한다. 그녀들은 수용소의 벽을 뚫어 구멍을 만들고, 체육복으로 몰래 밧줄을 만든 후, 경비들의 눈을 피해 4m 담과 철조망을 넘었다. 이처럼 주도면밀한 탈출 작전을 세우고 실행한 주동자는 1942년생 ‘김옥자.’ 그녀는 탈출 바로 다음 날 검거되지만 이후의 행적은 끊겨 있다. 감독은 ‘김옥자’를 찾아 나선다. ’서울시립부녀보호소’에 있었던 이들을 수소문하고 아카이브 자료를 파고들면서 감독은 보호소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국가는 1961년 ‘서울시립부녀보호소’를 설립하고 30여 년간 거리의 여성 수만 명을 수용했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 놓였고, 교화라는 이름 아래 낯선 남자와 강제 결혼을 한 여성만 수백 명에 이르렀다. 감독은 흘러간 세월 속에 묻혀 버린 보호소의 실체를 찾아내고, 또 ‘김옥자’를 만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수많은 이들이 보따리 하나 들쳐 메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던 시대에서 시작된다. 1960~1970년대 거리에는 고아, 부랑아, 윤락 여성, 넝마주이 등 제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방식은 ‘시설 수용’이었다. 거리의 남녀를 수용소에 밀어넣거나 원치 않는 노동을 시켰다. 이를 위해 급기야 낯선 남녀를 결혼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여성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역사의 수면 아래 묻혀 있다. ‘서울시립부녀보호소’ 등 여성 수용소에는 ‘성매매 여성들이 가는 곳’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져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근거 법령만 보더라도 수용소에는 ‘윤락 행위를 하거나, 할 가능성이 있는 자’를 수용했다. 즉, 여성이기만 하면 가둘 수 있었다. 당사자들은 현재까지도 고통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이들이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억압’이야말로 이 영화를 꼭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3길 22 전주영화제작소 2층 (54999)
T. (063)288-5433 F. (063)288-5411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15길 16 동극빌딩 4층 (04031)
T. (02)2285-0562 F. (02)2285-0560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3길 22 전주영화제작소 (54999)
T. (063)231-3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