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빛깔
들리지 않는 세상을 살아온 나의 할아버지, 박종웅. 사실 그는 항상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추락사고 이후 ‘건설업 사장’이라는 꿈을 펼치지 못한 채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들리지 않는 세상을 살아온 나의 할아버지 박종웅. 그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지 3년이 흘렀지만 내 카메라 속 그는 새로운 구석 없이 항상 소파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기만 하다. 이제야, 손녀인 나조차 그를 ‘장애인’이라는 선입견에 비춰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라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부터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박종웅을 온전히 마주하고자 한다. 내가 알지 못한 그의 다른 모습을 찾고자 가족들에게 묵혀둔 질문을 해본다. 새벽 산책에 눈 비비고 따라가 보기도 하고, 먼지 쌓인 그의 일기장을 다시 꺼내 읽기도 한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할아버지와 내가 찍은 폴라로이드로 서신 교환을 시도한다. 내 안에 어떤 프레임이 자리해 있는지 알기 위해 다시 카메라를 든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그저 즐겁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 그를 향해 카메라를 들면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소리를 못 들으셔.”라고 소개하면, 그 순간 스치는 침묵은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해 그를 향한 카메라를 내려두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영상 안에서 변함없이 종이 인형 같은 납작한 인물로 비칠 뿐이었다. 사실 할아버지는 항상 변해왔지만, 카메라를 든 나의 시선이 수년간 바뀌지 않아서 할아버지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할아버지를 틀에 머물게 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우리 가족은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가 사고를 당한 이후 우리 가족이 그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알아본다. 내 안에 은밀하게 자리한 그에 관한 프레임을 걷어내고, 그와 제대로 만나고 싶다. 지금의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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