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의 푸른 꿈
1959년 김시스터즈가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 진출한 것이다. 이들은 1960년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시안 가수들이었다. 김숙자,애자,민자의 세 자매로 이루어진 걸그룹의 어머니는〈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여가수 이난영,아버지는〈오빠는 풍각쟁이야〉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김해송이었다. 1970년대 초반,김시스터즈가 해체되고 나서 이들 셋 중 유일한 사촌 자매였던 김민자는 행적이 완전히 미스터리에 싸여 있었다. 형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재즈드러머인 남편과 함께 여전히 연주하며 살고 있었던 김민자를 찾아 떠나면,1930년대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는 이들 음악가족의 역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에드 설리번쇼 영상을 하나 접했다. 김시스터즈가 1963년도에 그녀들의 어머니인 이난영과 함께 그 유명한〈마이클 노를 저어라(Michael row the boat ashore)〉를 함께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아주 흥겨운 노래와 율동임에도 묘한 감동이 느껴졌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것과 같은 민족적 자긍심에서 오는
감동은 아니었다. 이들의 음악 세계 그 자체에서 오는 울림에, 그 자리에 없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김해송의 빈자리가 쓸쓸하게 다가와서였을까? 이런 내 감정의 실체를 찾아서,1959년 한국을 떠나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던 김시스터즈의 음악 여정을 따라가려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3길 22 전주영화제작소 2층 (54999)
T. (063)288-5433 F. (063)288-5411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15길 16 동극빌딩 4층 (04031)
T. (02)2285-0562 F. (02)2285-0560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3길 22 전주영화제작소 (54999)
T. (063)231-3377